들어가면서
로봇청소기 글은 완전 망한 것 같다. 유입도 없고 감동도 없고…
굳이 여기에 올려서 기술적이지도 않은 글로 흐리고…
중국회사에서 만든 것이라 사람에 따라서 불안해 할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고
최근에 브러시에 뭐가 끼면 폭망이라서 원격 처리가 안되는 일이 종종있어 귀찮기도 하지만 여전이 그는 우리집의 수호자고 나의 살림 파트너이다.
오늘도 나의 식기 세척기와 로봇청소기 그리고 의류 건조기에게 감사하며 나의 지난 근 3년을 돌아보려고 한다.
매우 긴 글이고 두서 없이 쓸 것이고 중간 중간 back tracking 이 많이 일어나서 글의 관점을 잃고 해메다가 다시 돌아오고 할 것이다.
이러려고 이런건 아니었다.
나는 인프라웨어를 나올때만 해도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같이 일하던 대학 동기와 헤어지면서 나도 급격히 회사 탠션이 떨어졌다. 그 와중에 마음에도 없는 모바일 오피스를 개발하려니 깝깝했는데 글로 적기 힘든 일이 터지면서 나는 회사에 대한 애정이 확 사라져버렸다. 세상은 아름답지 않았고 결국 회사의 이름 돈이 중요한 것이구나 싶어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LG 전자. 나는 이곳을 은퇴할 때 까지 다닐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생각이 고작 7년 정도 밖에는 유지되지 못했지만 지금와서 생각하면 내가 어떤 회사를 7년 이상 다닐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LG 를 나와서 나는 벌써 3 회사를 입사하고 3 회사를 퇴직했다. 아.. 이래도 될까?
같이 일하는 그가 퇴직하면서 흔들렸다.
인프라웨어 시절로 돌아가면 대학 동기님의 퇴직이 나에게 큰 어려움이 되었다. 물론 회사의 방향이 바뀌어서 웹브라우저를 할 수 없는 현실이 더 큰 어려움이 었을 것이다.
모바일 오피스를 하는 과정에서 겪은 Soft
하지 않은 랜딩은 정말 치욕 스러웠다. 함께 일하던 팀장님과 팀원들의 마지막 회식은 참 그랬다. 브라우저 코어를 유지보수 하면서 사실상 스스로 무언가 아이탬을 찾아야 한다는 것인데… 당시에는 나로서는 납득이 되지 않았고 여러가지 기행을 하는 상황을 만들게 된다. 그 중에 하나가 NotePadMinus
였던 것 같다.
노트 패드?? 마이너스???
이것은 팀에서 한 2명 정도씩 스스로 과제를 해서 무언가 만들어내는 그런 KPI, OKR 등등 현재 이야기 하는 무언가에 한줄도 적혀 있지 않는 그런 것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만든 나의 gig 스러움이었을 것이다. 당시 한줄도 짜고 싶지 않았던 나는 구글의 Note Sample app 을 가져왔고 단어를 선택해서 번역하게 했는데 당시 번역을 GET 요청으로도 쉽게 할 수 있어 그냥 처리하였었다. 그리고 우리는 아마 아이콘을 더 시간을 들여서 만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친구는 떠났다. 안녕~
나는 대학 후배 및 입사 동기님이 먼저간 LG CNS 를 가기 위해서 후배에게 이력서를 주고 기다렸다. 나도 대기업 가나 싶었다. 하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다. 흠… 내가 부족해서였겠지… 그래서 다른 후배가 알려준 LG 전자의 Tech Evangelist 지원을 해본다.
와! 오란다.
기술 면접을 봤다. 회사에서 반차 내고 회사 역 근처 사물함에 넣어둔 양복으로 환복하고 양재역도 아닌 그 과천까지 갈만한 그곳으로 땀나게 갔다.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한 PT 를 했다. 흠… 개발 부서가 아님을 확실히 알았지만 개발자가 와서 무언가 개발자를 이해하면서 일하면 될 것 같았다. 면접 마치자마자 연락을 받았고 나는 매우 감동해서 다른 일자리는 더 보지 않았던것 같았다. 참 그때가 그분이 나에게 가장 잘해주셨던 때였던 것 같다. 죄송도 하면서 참 힘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재밌었었다.
어쨌든 그럼에도 나는 퇴직했다.
Tech Evangelist 가 폭파되었고 그냥 스스로 퇴직하려고 했으나 좋은 선배분들께서 개발자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SDK 를 다루는 곳이었는데 AI 모듈을 포팅해서 webOS 에 설치할수 있게 하는 컴포넌트를 만들었다. AI API 는…. 그냥 start / stop 과 같은 단순한 API 로 사용할 수 있게 했으며 subscribe 가 되니까 그 부분을 이용해서 처리하게만 했는데… 일정이 구렸다. AI 모듈이 매번 늦게 왔다. 하… 근데 우리 일정은 고정? 뭐라고? 사실 인프라웨어때 딱 한번 책상을 무릎으로 친적이 있다. 퇴직을 앞두고 버그 10개인가를 저녁에 처리하라고 받았는데 그게 아마 회식 나 잘가라고 하는 회식은 아니었지만 뭐 그런 느낌적인 느낌의 회식에 받은 일이라서 화가 좀 났었던 것 같다. 진짜 니킥을 발사한건 아니고 몸이 스르륵 밀리는 느낌으로다가?
하지만 엘지에서는 일정을 한 10번쯤인가? 듣고? 책상을 쳤다. 이건 정말 아니지 싶었다. PM 이면 빠그라진 일정도 리커버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었지만 아니란다.
절이 싫으면?? 다 아는 그런 속담이다. 중이 떠나야지.
광고?광고!광고!!
데이블에 지원하게 되었고 사실 면접 볼 때 망했다 싶었는데 취업하게 되었다. 알고리즘 문제 푸는 시간동안 밖에서 생일 파티를 하셔가지고 집중이 안되기도 했지만… 틀린 문제를 맞았다고 우기기 까지 했기에 나는 잘 안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광고라는 영역은 너무 신기했다. 이런 산업이 있나 싶었고 문제를 풀기 어려운 실시간 데이터 처리도 있었고 물론 내가 엄청 고민할 것은 아니었지만, 그 어려운 멱등성도 있었다. 물론 내가 할 것은 아니었다만
엘지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 참 많았지만…
당시 정말 일해보고 싶은 분이 오셨고 그 한 손짓손짓 하나 내가 엄청나게 영향을 받는 다는 것을 느겼었다. 그분 팀에 가고 싶다고 했으나 팀장님께… 팀장님께서 고과로 답을 해주셨다. 물론 고과 받고 바로 때려치지는 않았다. LG 전자는 그때만 해도 기본급이 그렇게 높지 않았다. 인센티브가 나름 기본급에서 꽤 나오기 때문에 총 연봉이 좀 어떻게 되는것이고 그리고 그 전체주는 인센티브가 아닌 개인으로 받는 인센티브 혹은 정해지지 않은 시점에 나오는 돈이 있어 연봉이 좀 다닐만 한것인데 이렇게 난장질을 당하면 참 난감해 진다. 물론 그 다음해 정말 별별짓을 다하면서 올려서 다시 원복했지만 원복하면 뭐하겠는가 이미 마음은 상했다. 그리고 정말 배우고 싶은 분은 이미 다른 조직으로 떠나버리셨다. 물론 지금은 멋진 센터장으로 계시지만 나는 그새를 못참고 뛰쳐 나왔다. 그분 뿐만아니라 많은 분들과 일해보고 싶었지만 나는 참 실력이 별로 였는지 닿지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이 그 7년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그냥 일정말 때려 맞추라는 2000년대 초반의 PM 만 앞에 있으니 화가 참 날 수 밖에… 일러도 참 뭔가 도움도 못받고 참…
다시 광고!!
어쨌든 매우 일하고 싶은 분들이 여기저리 자리에 앉아 있는 회사에 오니 기분이 좋았다. 물론 연봉 조정시 와서 보여주세요 해서 완전 삔또가 상했었지만 그냥 참았다. 사실 엘지에서 이런 문화에 익숙해서 와서 보여주세요가 얼마나 치욕적인 것인지 그때는 몰랐다. 물론 가서 보여줬고 답은 숫자로 대강 받았다. 혼자 한 것은 아니나 나간 리더 동료분을 매우고 나름 나가도 큰일 안난다는 것을 잘 증명했고(물론 하나 정도 큰일이 있었고 수습이 어려움을 알리려다가 혼도 나고 뭐 그랬지만..) 그렇게 의외로 재밌게 보냈다.
오토메이션!!!
광고 검수가 참 그지같았다. 담당자가 링크 하나하나 다 열어보는 데 참 보는 내가 미칠것 같았다. mixed content 정도는 봐주고 있었는데 그냥 목록 다 해주고 싶었다. 또 그럴 것이 내가 여기 오지 않았으면 갈 그 회사, UI Path 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 퇴사하라고 하더니 오퍼 레터를 결국 주지 않았다. 면접을 얼마나 봤는지 모른다. 코딩테스트에 줌에… 덕분에 그 경험으로 여기저기 면접을 잘 이어가긴 했지만. 어쨌든 이런저런 일들을 자동화하고 손만 까딱하고 싶었다. 그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코로나가 터졌고 사실 코로나 이전에 나의 가족에는 더 큰일이 터졌다. 이 곳에 남길 수 없는 큰일이었고 나는 무조건 가족에 집중해야만 했다.
코로나?
생각해보면 코로나가 아니었어도 나는 데이블을 나왔을 것 같다. 당시에 나는 아이들을 맡아서 이것저것을 해야 했는데 처음엔 1일 재택으로 어떻게 우겨 넣었었다. 하지만 점점 되지 않았다. 나의 경력이 이제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무렵 코로나가 터졌고 나는 이상하리만큼 좋았다. 아이들을 더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 그 끔찍한 일은 천천히 무뎌졌다. 뭐 어느정도는 잘 풀어졌다.
티비에 나오는 의사 선생님들
멋지지만 막상 만나보면 너무 무섭고 실망스럽기도 하다. 멋진 개발자분들 역시 만나보면 실망할 수도 있다. 우리는 그냥 사람이니까? 그렇게 그 큰 회사 마이크로소프트도 실망할 포인트가 많았다. 물론 엄청 즐겁고 좋기도 했지만 당시 나는 빨리 식었다.
고수익 재택 알바
인스타에 계속 누가 친구 추가 한다. 지겹다. 이제 비공개 한다. 처음엔 남자 육아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었지만 가능성이 0 라는 것을 알았다. 그저 친구들이나 봐라라고 올리는데 볼만한 친구가 있을까 싶다. 고수익 알바 초대나 받을 거면 그냥 없앨까 싶다. 하지만 나는 이미 집에서 일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에저팀의 서포트엔지니어 자리는 개발자가 아님에도 매우 매력적이었다. 왜냐면 인터뷰를 본 실무자가 매우 매력적이었다. 배울것도 많다고 생각했고 성품도 좋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 글을 쓰는 날(23.11.20)의 다음날 잠깐 만나기로 했다.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는 나로서는 선뜻 하지 않는 행동이다. 그만큼 좋은 동료였고 참 많이 배웠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를 택해줬다.
당시 쿠팡 사이닝보너스빵 채용도 진행중이었는데 참 그 회사는 경험이 별로였다. 당시는 이번에는 사실 괜찮았다.
쿠팡?
당시에는 면접 일정을 잘 잡아주지 않았다. MS 에서는 언넝 오라고 하는데 그냥 그럭저럭 했다. 물론 최근에는 엄청 타이트하게 잡아주었고 내가 혼이 털렸고 그래서 인터뷰 보는에 엄한짓을 하고 있더라. 인터뷰 담당자가 이리저리 돌려서 이야기 해주는데 잘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실용적이지 않은 코드를 짜고 있었다. 물론 인프라 관련해서 CSR 을 밀어 붙인 것이 가장 최악인 것 같긴 하지만 아마 그때 나로서는 잘 답변을 못했다고 생각한다. 쿠팡은 대단한 회사고 한번쯤 일하고 싶지만 나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다. 오라고 부를때는 내가 상황이 아니고 가고 싶다고 했더니 서류를 짤라버리고 있는 이 이차선 도로 같은 상황은 향후 10년 동안 개선이 되지 않으리라…
코딩 테스트!
사실 나는 코딩 테스트에서 떨어져 보자는 생각을 잘 못했었다. 실제로 그러기도 했었다. MS 니 구글이니 코딩 테스트 영역은 탈락의 요소가 되지는 않았던 것 같았지만…
나는 반성한다.
최근 유명한 큰 회사에 코딩 테스트를 그냥 편히 봤다가 거의 문제도 못풀고 울었다. 채용 담당자께서 어렵게 주선해주신 자리에서는 어버버 하다가 나왔다. 물론 그 인터뷰 전날 그리고 전전날 모두 잠을 못잤었다. 애가 열이 38도를 유지했었기에 나는 하던대로 밤을 세웠다. 나는 원래 상병때 부터 당직을 섰었고 그냥 밤세우는 것을 대강 잘한다. 인프라웨어때도 새벽까지 2,3 시 까지 일 잘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랬는지 모 회사에서는 코딩 테스트로 모험도 걸어봤다. 뻔한 코드 내면 시스템 설계 망친거 커버를 못할 것 같아서 정말 무모하게 해봤다. 물론 뭐 무모하면 항상 결과는 좋지 않다.
프로미스의 추억
코딩 테스트중 프로미스가 또 나왔었다 최근에. 사실 미국에 본사가 있는 모 회사 면접을 볼때 프라미스 관련 코드를 짰었는데, 사실 버그가 아닌 것을 버그라 하고 다른 버그는 구조상 고치기가 어려웠었다. 그랬더니 버그는 버그 고치라고 해서 TC 를 돌리며 실망했던 기억이 나면서 그 프로미스 문제가 풀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Promise 의 callback 의 context 는 뭘까? 나는 순간 매우 당황했지만 그냥 내가 쓰고 싶은 Promise 를 그려봤다. 생각해보면 코딩 테스트는 대화하듯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뭐 시스템에서 문제 풀어 답내서 정형화하는 것이라면 뭐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조금 달리 생각한다. 코드를 짜라고 내주면 짠 코드 보고 코드로 답을 해줬으면 좋겠고.. 그게 처음 정한 답이 아닐 지도 모르지만.. 그런 오고감이 있으면 핏을 단숨에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갑작스래 데이블때 뵈었던 그 분이 생각이 난다. 잘 지내시겠지.. 그 팀을 놓아 두고 퇴사한건 참 아직도 계속 맴도는 그런 일이다.
집에서 일해요.
사실 이때 Public Cloud 그리고 로깅 시스템에 대해서 많이 배웠다. 하지만 참 써먹을 데는 없는 것 같다. 이때도 해프닝이 있었다. 그 좋은 동료는 다른 팀에서 다른 역할을 하기 원했다. 나는 좀 내가 봐도 큰 것 같았다. 케이스도 꽤 처리했으니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리고 팀도 커져서 메니저분도 새로 왔다. 하지만 메니저 분께서 2달만에 나가셨다. 안녕. 사실 그 나가시는 주에 매우 싸했다. 뭐 결과론적인 것이겠지만..
엘지에서 나온 이야기 쓰는데 아직도 여기네
그렇다 엘지에서 나와서 회사 3개를 옮긴 이야기를 쓰려는데 잘 쓰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엘지는 답답해서 나왔고 데이블은 코로나 가정사가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주변에서 찔러서 나오게 된 것 같다.
그 좋은 회사를 왜 나와요?
오랜만에 회사에 갔는데 어떤 선배분이 이름뿐인 마이크로소프트 라며 너무 이름에 얽메이지 말라고 하셨다. 그 무렵 이상하게 나에게 연락이 왔다. 다들 오랜다. 왜지? 나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연봉은 깍으면 기분이 구리다
제안을 받은 회사중에 참 감사하고 죄송한 회사들이 많았다. 특히 꼭 가고 싶었는데 못간 회사들이 여럿 있다. 원래는 개발팀 동료분들이 너무 좋아서 연봉깎아서라도 갈까 하는 회사가 있었는데… 안되더라.
기대 연봉이하면 가기가 쉽지 않다.
물론 좋은 기회를 날렸지만 당시 나의 그릇으로는 쉽지 않았다.
그 좋은 회사는 여기저기에서 개발하자고 해서 나왔다.
개발 다시 하자. 개발이 재밌긴 하다. 그래서 버드뷰로 갔는데…
나가라고 이야기가 나온건 아닌데 내가 안나가면 다른 사람이 나갈 배틀 로얄의 상황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아내한테 욕먹고 나왔다.
앞으로 이럴까 싶다.
그래 나는 러스트 보고 있다. 이번에 회사 알아보면서 golang 혹은 python 그것도 안되면 spring 진짜 그것도 아니면 nestjs 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golang 은 언어 초기에 겪은 그 말도 안되는 환경설정때문에 트라우마가 지지 않는다. 그리고 python 은 어이없는 그 환경을 쓸거면 nodejs 가 낫다는 나의 판단을 꺽지 못하겠다. 그리고 spring 과 nestjs 의 그 어노테이션이며 말도 안되는 싱글톤은 감당이 안된다. 그래 그냥 나는 러스트를 하련다. 막상 하려니 써먹을 때가 없어서 제대로 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할까 싶다.
재택을 어찌하리요?
사실 재택이라는 말은 싫다. remote 근무인 것이지.. 처음 일라스틱스에서 이거저거 관심있냐고 cold 하게 물어보던 기억이 있다. 너무 솔직하게 이거저거 못해요 했더니 그럼 말아요 했던 것 같은데, 당시 Spain 이었던 것 같은데 거기서 일하는 담당자와 일라스틱스가 아닌 그냥 일하는 사람과 일하는 사람으로서 이야기를 해본적이 있다. 그때 처음 remote 에 대해서 에게 뭐겠다 싶었다. 비동기적인 의사 결정 방법과 상황에 따른 동기적인 처리는 마치 API 호출과 같았다. 그래서 더 아름다워 보였나보다.
지금은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할 것 같긴하다. 하지만 언젠가 gitlab 과 같은 아름다운 remote 환경에서의 어마무시한 무언가를 만들어 보고 싶긴하다.
사실 나가고 들어오고 하는 힘도 줄이고 오로지 일만 해야겠다고 힘을 쏟으면 더 결과물이 잘 나온다. 다만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어보이는데… 그건 의사 결정을 하겠다는 주체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냥 모여서 아무 생각없이 모여서 하는 회의는 정말 의미가 없다. 지금 어떤 것을 논의해야하고 어떤 것을 정하던기 그냥 없애던가 정도의 Scope 가 없다면 모여서 하던 remote 로 하던 의사소통이라는 과정이 아닌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다만 월급주시는 그 분들의 생각이 그러하다면 내가 바뀌어야 하겠지만 언젠가 내가 몸으로 보여 그분들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바꿔볼 수 있지 않을까도 싶기도 하지만 잘 모르겠다. 이제 그 나의 큰 일, 천지개벽하는 것 처럼 천둥소리가 이명으로 들리던 나의 그 상황이 어느 정도 사라지기도 했으니 나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FE 할거니 BE 할거니?
사실 나는 플랫폼이 해보고 싶다. webOS 에서 느낀 좌절감을 모두 날려버릴 그 멋진 Platform 을 해보고 싶다. 물론 요새 gpt 가 그냥 platform 만들어 줘 하면 만들어 줄 것 같아서 내가 뭘 하겠나 싶긴 하지만 나는 꼭 해보고 싶다. 간단하게는 매번 꼭 계속 쓰는 코드가 있다면 함수 혹은 컴파일해서 자동 생성하는 코드제너레이터 라도 만들어서 사람이 무언가를 쉽게 담을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사실 그래서 FE 인지 BE 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다만 어떤 동료인가가 중요할 것 같다.
FE 하시는 분들이 있으면 FE 에 더 집중하고 그 기술을 견고히 더 쌓아야 하겠지… 만 나는 틈나면 몰래 Rust 를 할 것이다. 언제가 힘이 꺽이면 go lang 정도 할 것이다. 언어로서 재밌는 언어는 계속 하고 싶다.
글도 쓸 때 재미가 있어야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글 쓰는 게 점점 재미 없어져서 내용이 점점 퀄리티가 줄어들고 있다. 봐봐라 재미가 없으니 글을 점점 못쓴다.
처음 JavaScript 를 접했을 때와 지금은 무언가 다르다. 그저 컴포넌트 찍찍 찍어내는 느낌이다.
JavaScript 로 뭘했길래?
나는 OOP 에 미쳤었던 사람이다. 모든 것이 OOP 로 해결 될 줄 알았지만.. 역시 아니지.
JavaScript 로 UI 를 만드는 것도 나에게는 그저 상속이었다.
render 라는 interface 를 구현한 콘크리트 클래스였었다.
예를 들자면 List component 를 만든다 치면 element array 받아서 그 data value 를 ol 혹은 ul 에 담아 li 로 쓱쓱 뿌려주는 정도이다.
거기서 active list 만든다고 치면 render 할 때 data 의 필터 정도가 앞에 있어서 data 의 attribute 를 보고 active 인지 판단해서 그냥 스윽 내는 정도? 가 될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냥 list component 의 redner 에 option 을 주어서 처리할 수도 있다. 근데 그 option 이 함수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 그렇게 나는 클로저의 바다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말이다 그렇게 짜니 남들도 못알아 보고 나도 나중에는 뭔가 싶더라.
요새는 함수형 언어가 되는 것 같은데…
절차가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이 든다. 선언적이니 응집도니 하는데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어느 정도 다 아는 것은 미리 깔아 놓는 그런 라이브러리 정도를 항상 만들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요새 gpt 가 해주더라. 흠.. 나는 뭘 하고 먹고 살아야 할까?
어쨋든 나는 문제 풀 것이다.
뭐가 되었던 코드로 해서 문제를 풀까 싶다. 데이터를 사용하여 확률적으로 동작하게 하는 것은 잘 못하겠고 어느 정도 동작을 추상화 하여 매번 돌려도 깜찍하게 답이 예상한대로 나오는 그런것을 하고 싶다. 그것이 html 을 결과로 낼 수도 있고 json 을 결과로 낼 수도 있다고 생각이 될 뿐이다.
경험을 돌려주어야 한다.
사실 인프라웨어때부터 나에게 영감을 준 수많은 선배들이 있다. LG 에서도 Dable 에서도 그리고 Auzre 팀에서도 나는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때론 연인처럼 때론 남남처럼 그렇게 지내며 빚을 지고 있다.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이 덕분에 많이 사그라 들었다. 그리고 왜 사그라 들었는지 잘 전달해야 할 것 같다. 때로는 대신 욕먹어 주시던 그 형님들 처럼 나 역시 대신 욕먹고 더 기다리고 해야 할 것 같다. 지금도 뭐 그 비슷하게 먼저 나왔다. 아내가 참 그래한다. 오빠 이력서 왜 더 안넣어 덕에 이번에 많이 힘들었다.
혹 기회가 되면 아이들의 코딩도 알려주고 싶다.
원래 나는 어린이들의 리눅스 토발즈가 되고 싶었다. 스케치 같은 시퀀셜한 개발이 아닌, 이벤트 드리븐 식으로 개발하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다. 근데 그 플랫폼을 내가 만든 그 언어로 만든 것이지. 아래는 C++ 겠지만
처음 생각한 언어는
물론 Yacc 와 같은 것으로 만든 언어라 내가 만든 언어라고 할 수도 없고 나중에 같은 팀 친구들이 이것저것 넣었으니 내가 만든 것은 아니다. 그 언어는 CS 교육용 언어였다. 기본적으로 Data Structure 가 Class 로 제공되고 new 등을 통해서 인스턴스화 된다. 필요한 push pop 같은 동작은 제공을 한다. 그리고 디버그 모드일 때 동작을 에니메이션 시켜서 보여준다. 님이 짠 코드는 이렇게 데이터가 왔다가 나가요 정도로? 이렇게 해서 기본적인 자료구조를 알게 하고 자료구조를 몇몇 composition 시켜서 원하는 자료구조로 만들수 있게 해주는 그런것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보니 small talk 로 수렴하고 있었다. 잉? 왜지? 학습용인데…
어쨌든 이런 생각은 변함이 없다. 쉽게 이해하고 쉬운 이해를 바탕으로 생각을 잘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런 경험을 전달하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컴파일러 누가 만드니? 였는데 요새는 LLVM 등등 컴파일러 만든다는 사람들이 꽤 되는 것 같다. 내 드레곤 북은 과연 어디 있을까?
마치며
그렇게 자극적인 글이 나온 것 같지는 않다.
노잼인 것 같다.
내가 배컴도 아니고 회고를 뭘 하냐마는 결국 모두가 살아가고 있으며 모두가 어제를 보내고 내일을 오늘로 만들어 가고 있다.
모두에게 어제는 있고 내일도 확률적으로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