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면서
브라이언 커니핸 님이 쓰고, 하성창 님께서 번역하신 유닉스의 탄생을 읽었다. 느낀바가 있어 몇 자 적어본다.
이 책을 중고서점에 팔 것인가?
정가는 2만원이다. 지금 팔면 1,800 원을 받을 수 있다. 일단 너무 가격이 저렴해진다. 칸반과 스크럼
도 900원은 받는데 너무 저평가 된 것 같다. 뭐 일괄적인 것이겠지만… 정가 만원당 900원. 어쨌든 1,800 원에 떠나보내지는 않으려고 한다.
재미가 있는가?
재미 있다. 역사서는 아니고 개인적인 경험들을 살살살 풀어 놓은 것이라 흥미가 있다. 마치 에전에 교수님들께서 코딩 숙제를 마감해야 하는데, 왠지 코드에 자신이 없으면 일찍 아이스크림 같은 것을 사가서 1번으로 돌려 달라고 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기억이 난다. 그리고 결과를 받자마자 이래저래 고쳐서 마지막에 한번 더 돌려서 마무리 하셨다고 하셨던 것 같다. 천공카드… 사실 본 적은 있다. 실제로 포트란, 코볼을 다루셨던, 지금은 연락을 드리지 못하는 이모부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었기에 약간은 안개낀듯 멀지만 왠지 그 시대에 살아 있는 것도 같다.
응? 진짜?
나는 사극빠이다. 최근 고려거란전생도 재미있게 보고 있다. 마치 이 책은 그런 느낌을 준다. 직원들이 방을 가지고 있었고 직급에 따라 카펫 색이 다르다는 등등 사실 유닉스와 상관 없어 보이지만 상관있는 그 날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래서 재미가 있다.
사람 냄새가 나는 책이다.
바로 그때 켄의 아내가 한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캘리포니아에 있는 켄의 부모님을 만나러 3주간 휴가를 떠났기에 켄은 집중해서 일할 수 있었다.
아!!!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성은 언제나 있다.
그는 부서장이었지만 그의 부서에는 아무도 없었다. 좀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이처럼 적합한 직함을 달면서도 관리 책임이 없는 위치에 오르려고 공을 들였다고 했는데, 나는 휠씬 나중에 십여 명 정도 조직의 부서장이 되고 나서야 그 말을 이해하게 됐다.
아!!! 이런!! 진급은 하지만 관리는 안한다니!!!
평가와 의견을 작성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사람들은 개선이 필요한 사항을 비워두는 경향이 강했다. 어느 해인가 그 부분도 내용을 채워야 한다는 지시를 받아서 더는 비워놓거나 '해당 없음' 정도로 얼버무리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나는 '지금처럼 계속 잘 해주세요' 라는 문구를 생각해 냈고 그것으로 한두해를 때웠다.
이 정도면 우리는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 같다. 최근 나는 고가 평가를 내리지 않아도 되서 너무 좋았다. 낮은 고가를 평가하거나 면접의 결과를 탈락으로 낼 때면 나는 거의 2,3주간 너무 힘들어서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하지만 그 것을 누군가에게 말할 수도 없었다. 역시. 선배들도 같은 마음이었다.
또한 벨 연구소는 사람들이 저녁에 집에서 계속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었다. 내 집에는 수년간 머리 힐의 유닉스 시스템에 연결되는 전용 전화선이 설치돼 있어 저녁이나 주말에도 일할 수 있었다.
역시 재택은 이런 용도였다. 이 정도면 정말 소름이다. Remote 로 일할 때 좋은 점은 아이들을 챙길 수 있는 것이지만, 일하는 시간은 정말 계속 늘어난다. 밤에도 내일을 위해서 코드를 볼 때가 점점 늘어난다. 하지만 최근 옮긴 회사에서는 회사에 나오라고 한다. 2주간 나갈 것인데, 아무도 내가 2주간 나올지 2일간 나올지 말을 해주지 않는다. 첫날이라 그런가? 어쨌든 그래서 나는 모든 환경을 회사에 놓고 왔다. 다른 의미로 참 고맙다.
실제 사용자에게서 실질적인 문제가 생겨나고, 관련 이론에 대한 깊은 지식, 그 이론을 실제로 잘 적용한 효율적인 엔지니어링, 지속적인 개선까지 더해 훌륭한 기술이 완성 됐다. 이는 유닉스 개발팀에 폭넓은 분야의 전문가들이 있었고, 업무 환경이 개방적이었으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험해보는 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물론 역시나 다른 이야기도 많다. 나도 저 틈에 끼어서 바보 소리를 들을 지언정 코드 한줄을 올려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면서
이제 일한지 15년이 되어 간다. 과연 나는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실패한 역사지만 도움이 될 지 모르겠지만 잘 전해야겠다.
웹이라는 것을 우연히 접했고 그래서 이 시장이 어떻게 폭발하는 지 멀리서 지켜보았다. 웹이 플랫폼이 될 줄도 모르면서 플랫폼 플랫폼 하고 다녔으며 - 개발자! 개발자! 하지 않은 것이 다행일지 아닐지 모르지만 - 어쩌다 보니 HTTP 로 요청하면 HTTP 로 응답하는 과정을 경험하였고, 퍼블릭 클라우드의 어느 치맛자락 정도를 잡아 보았다. HTTP 로 응답해주는 HTML 페이지를 조립하는 그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긴 하지만 AI 는 좀 나한테는 아니지 하고 버티고 있지만 그 어떤 조류에 휩쓸려 그 최신 유행에 닿을 것 같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이러한 이야기들을 잘 정리해서 언젠가 전해야겠다.
오늘 첫 출근을 이렇게 마무리 한다. 이 글을 굳이 링크드인에 걸지 않으리라. 저번에 한번 조회수 좀 올랐다고 바로 다른글 올렸다가 망해서 그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