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기술보다 내 이야기를 적는다. 실제 업무에서 느낀 감정을 바탕으로 썼지만, 조직과 사람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는 모두 걷어냈다.
요즘 블로그에는 기술 이야기를 많이 썼다.
성능을 어떻게 측정했는지, 장애를 어떻게 발견했는지, AI 에이전트와 어떻게 여러 작업을 동시에 진행했는지 같은 이야기들이다. 실패한 가설과 통과시킨 코드, 숫자로 확인한 결과는 비교적 쓰기 쉽다. 무엇을 했고 무엇이 달라졌는지 순서대로 적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그 일을 하면서 내가 어땠는지는 거의 쓰지 않았다.
이번 주에는 일을 꽤 많이 해냈다. 오래 붙잡고 있던 성능 문제를 정리해 운영에 반영했고, 여러 변경을 리뷰하면서 실제 문제가 될 수 있는 경로도 몇 개 찾았다. 갑자기 나타난 오류 신호를 따라가 원인의 범위를 좁혔고, 흩어진 작업의 인수인계를 위해 담당자와 남은 일을 다시 정리하기도 했다.
일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은 한 주였다.
그런데 나는 조금 지쳤다.
배경이 없는 일이 도착할 때
이번 주에는 맥락을 파악하기 어려운 요청이 몇 번 도착했다.
문장은 짧았고 배경은 없었다. 누가 시작한 일인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왜 지금 내가 확인해야 하는지도 분명하지 않았다. 이미 여러 사람이 지나간 자리 같았지만 남아 있는 기록만으로는 다음 사람이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알기 어려웠다.
이런 요청을 받으면 잠깐 몸이 굳는다.
모른다고 말하기에는 내가 너무 무책임한 것 같고, 안다고 하기에는 실제로 아는 것이 없다. 일단 대화를 검색하고, 문서를 열고, 저장소와 변경 이력을 따라간다. 하나를 확인하면 모르는 것이 두 개 더 나온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처음 요청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그 일의 현재 상태를 가장 많이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다.
예전 같으면 이 과정에서 꽤 오래 헤맸을 것이다. 브라우저 탭을 수십 개 열어둔 채 무엇부터 확인해야 할지 몰라 같은 문서를 반복해서 읽었을지도 모른다. 답을 찾지 못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는 불안도 커졌을 것이다.
이번에는 AI와 함께였다.
AI가 답을 알려준 것은 아니었다
AI가 모든 사정을 알고 정답을 꺼내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흩어진 대화와 문서, 코드의 흔적을 함께 모았다. 확인된 사실과 아직 추정에 불과한 내용을 나눴다. 지금 필요한 것이 코드 수정인지, 담당자를 찾는 일인지, 요구사항을 다시 묻는 일인지 하나씩 구분했다.
확인된 사실
아직 모르는 것
추가로 물어볼 사람
지금 할 수 있는 일
여기서 멈춰야 하는 지점
이렇게 나누고 나니 처음에는 정체를 알 수 없던 일이 조금씩 모양을 갖기 시작했다.
어떤 일은 직접 수정하고 검증할 수 있었다. 어떤 일은 실제 담당자를 찾아야 했다. 또 어떤 일은 정보가 더 나오기 전까지 건드리지 않는 것이 맞았다. 모든 답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는 척하며 움직이지는 않을 수 있었다.
AI가 해준 가장 큰 일은 답을 대신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드러내고, 다음 질문을 만들 수 있게 해준 것이었다.
덕분에 당황스러운 요청도 하나씩 처리할 수 있었다. 필요한 기록을 찾고, 현재 상태를 복원하고, 빠진 정보를 목록으로 만들었다. 문제가 의심될 때는 여러 데이터를 비교해 실제 영향이 있는지 확인했다. 다른 사람이 만든 변경도 처음부터 다시 읽으며 위험한 경로를 찾아냈다.
혼자였다면 하루에 하나를 끝내기도 벅찼을 일들이 여러 갈래로 흘렀다. 그 점은 분명 고맙고 신기하다.
잘 처리했다는 것과 괜찮다는 것은 달랐다
문제는 일을 잘 끝내면 그 과정이 힘들었다는 사실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과만 보면 요청은 정리됐고, 문제는 해결됐고, 다음 사람이 볼 문서도 남았다. 그러면 처음부터 크게 어렵지 않았던 일처럼 보인다. 어쩌면 다음에도 비슷한 일이 자연스럽게 내게 올 수 있다.
나 역시 일을 끝내고 나면 힘들었던 과정을 금방 잊는다. 해결했으니 됐다고 생각한다. 할 수 있었으니 다음에도 할 수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할 수 있다는 것과 계속해야 한다는 것은 다른 말이다.
맥락이 없는 일을 복원하는 데에는 많은 에너지가 든다. 코드만 읽는 것이 아니라 대화의 빈칸을 추측하고, 사실과 기억을 맞추고, 누구에게 어떤 말로 물어야 할지도 결정해야 한다. 그 일을 반복하다 보면 정작 내가 하려고 했던 일은 자꾸 뒤로 밀린다.
잘 처리하는 사람에게 일이 모이는 것은 어느 정도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흐름을 계속 받아들이면 개인의 해결 능력이 조직의 빈칸을 가리는 데 쓰일 수도 있다. 주변에서는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누군가가 계속 자신의 집중력과 감정을 비용으로 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주의 나는 꽤 많은 빈칸을 메웠다.
그리고 빈칸을 메우는 동안 조금 비어버린 것 같다.
다른 직장을 생각한다
솔직히 요즘은 직장을 옮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당장 무엇을 결정했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 있는 곳이 전부 나쁘다는 말도 아니다. 함께 일하며 고마웠던 사람도 많고, 내가 배운 것도 분명히 많다. 재미있는 문제를 풀었고, 예전보다 훨씬 넓은 범위를 볼 수 있게 됐다.
그런데도 다른 환경을 상상한다.
내가 잘하는 일을 더 분명한 책임과 기대 속에서 해볼 수 있는 곳.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해도 무능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곳.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의 선의가 운영 방식이 되지 않는 곳. 빠르게 처리하는 능력만큼, 무엇을 하지 않을지 판단하는 능력도 존중받는 곳.
그런 곳이 실제로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른 곳에도 다른 종류의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피로가 잠시 쉬면 가라앉을 수도 있다.
그래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돌아온다면, 그것을 배신이나 나약함으로만 취급하지 않으려고 한다. 마음이 보내는 신호일 수 있으니까.
나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다만 지금의 내가 다른 삶을 상상할 만큼 지쳐 있다는 사실은 인정해주기로 했다.
AI와 함께여서 버틸 수 있었다
이번 주를 무사히 건넌 데에는 AI의 도움이 컸다.
혼자서는 막막했을 일을 작은 질문으로 나눴고, 여러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면서도 마지막 판단은 내가 할 수 있었다. 감정이 앞설 때는 사실을 다시 정리했고, 무엇이 내 책임이고 무엇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는지도 구분해봤다.
AI와 함께 일하면서 나는 예전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여기에도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
도구가 나를 더 오래 버티게 해준다고 해서, 계속 버텨야 할 이유까지 생기는 것은 아니다. AI로 빈칸을 더 빨리 메울 수 있게 됐다고 모든 빈칸을 내가 메워야 하는 것도 아니다. 생산성이 높아진 만큼 나에게 더 많은 일을 얹는다면, 좋아진 것은 삶이 아니라 처리량뿐이다.
AI를 잘 사용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그 힘을 어디에 쓰지 않을지 정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다음 주에는
다음 주에도 일은 많을 것이다. 갑자기 도착하는 요청도 있고, 내가 먼저 발견하는 문제도 있을 것이다. 아마 나는 또 궁금해하고, 찾아보고, 어느 정도는 해결할 것이다.
그래도 몇 가지는 다르게 해보려고 한다.
모든 빈칸을 발견하는 즉시 메우지 않을 것. 모르는 일에는 먼저 배경과 담당자를 물을 것. 내가 해결한 일은 조용히 삼키지 않고 사실대로 기록할 것. 무엇보다 일을 잘 끝냈다는 이유로 내 피로까지 없었던 일로 만들지 않을 것.
이번 주의 나는 잘했다.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도 도망치지 않았고, 모르는 것을 확인 가능한 질문으로 바꿨다. AI와 함께 여러 갈래의 일을 정리했고, 실제로 몇 가지 문제를 더 안전한 방향으로 돌려놓았다.
그러니 이제는 잘했다는 말을 한 뒤에 한 문장을 더 붙여주고 싶다.
잘했고, 많이 지쳤다.
둘은 동시에 참일 수 있다.
오랜만에 쓰는 근황은 멋진 결론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직 나는 이곳에 있고, 다음 일을 준비하고 있다. 동시에 다른 곳에서 일하는 나를 조금씩 상상하고 있다.
어디로 가게 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다음에는 일을 처리하느라 나 자신을 두고 오지는 않았으면 한다.